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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치매노인을 보고왔다

친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아빠는 엄마와 이혼한 이후로 할머니와 계속 같이 살았다. 할머니와 아빠는 언제나 언성이 잦았고 언제나 싸웠고 나도 할머니랑은 못살겠어서 따로 나와 살게 되었다 따로 나와 살게 되면서 나는 보증금이 필요해졌고 그 보증금을 구하기 위해 결국은 후회할 선택을 하게 되었고 아빠는 계속 그 집에서 할머니와 살았다. 나는 엄마와 다른 집에서 계속 살았다.
할머니가 치매 초기란 얘기는 그 사람도 얘기했었다.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치매 환자들을 자주 보는 사람 얘기니까 나는 믿었다. 별로 의미는 없었다. 
그 사람은 떠났고 할머니의 상태는 점점 심해졌고 아빠는 힘들어했다. 우리 모두가 힘들어했다. 큰 고통이 있으면서도 못 본 척하며 자기 자신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으려고 하는 것은 자해일까 고결일까.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내 나름의 고통이 있었고 그동안 할머니의 세계는 부서지기 시작했다. 별로 다들 상호연관은 없었다. 일어나는 일은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할머니를 단 한순간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그랬다. 인자한 할머니의 사랑을 받는 귀염둥이 손자들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냐는 사람들을 잠시는 부러워했고 그 이후로는 얘기 자체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넓은 척 하지만 사실은 미워하는 사람은 평생 미워하는 사람인 걸 요새 깨달았다. 그런 미움은 지열 발전 같은 것처럼 힘은 세지 않아도 절대로 꺼지지 않는 것 같다.
언젠가 아빠는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돈을 누가 내던가 하는 건 어른들이 결정했다. 마음에 일말의 요동도 없었다. 종종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장면이나 그 후를 생각해 봤었다. 별로 생각하기도 귀찮았다. 
코로나가 닥쳤고 나는 나대로 바빴다. 의식의 대부분은 다른 일에 할애해 왔다. 코로나 때문에 어딜 면회를 간다거나 하는 것도 어려웠다. 사실 갈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오늘 면회에 가게 되었다. 많이들 백신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못 알아보았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굉장히 슬퍼 보였다. 그렇구나.
살아 있는 사람의 성묘에 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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